[리뷰] SF가 어렵게 느껴졌던 나도 끝까지 재미있게 읽었던 책
김초엽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리뷰 & 전편 줄거리 요약

김초엽 작가의 책은 국내 SF 소설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이전에 『파견자들』, 『다시, 몸으로』, 『지구 끝의 온실』 같은 작품들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읽으면서 늘 비슷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조금 어렵다.” “낯설다.” “내가 SF 장르를 싫어하는 건가?”
아무래도 저는 현실적인 이야기나 인물의 감정선을 길게 따라가는 소설을 더 좋아하는 편이라, SF 특유의 세계관이나 설정들이 쉽게 와닿지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나는 SF 취향이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제가 이번에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게 된 건 지인의 추천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시작하기 전에도 조금 망설였습니다. “또 어렵게 느껴지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읽기 시작하니 생각보다 훨씬 괜찮았습니다.
단편이라서 더 좋았던 SF 소설
이 책은 장편소설이 아니라 여러 편의 단편이 모여 있는 작품집입니다. 오히려 그 점이 저에게는 잘 맞았습니다.
원래 저는 깊이감 있는 장편소설을 좋아하는 편인데, SF 장르는 오히려 짧은 호흡으로 읽는 편이 더 부담이 없고 집중도 잘 된다는 걸 이번 책을 통해 느꼈습니다.
장편 SF는 세계관 설명이나 과학적 설정을 따라가다 보면 중간에 지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 책은 단편마다 분위기와 주제가 달라서 훨씬 편하게 읽혔습니다. 짧은 이야기 안에서도 감정이 선명하게 전달되는 점이 좋았습니다.
추천하는 대표 단편 감상
✔ 「스펙트럼」 — 외계 생명체 이야기인데 이상하게 외롭다
「스펙트럼」은 외계 생명체와의 교감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SF다운 설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읽다 보니 결국 인간의 외로움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서로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마음, 말이 통하지 않아도 감정을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 굉장히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읽고 나니 “이게 정말 SF 소설 맞나?” 싶을 정도로 감정적인 여운이 남았던 것 같습니다.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결국은 기다림에 대한 이야기
표제작 역시 단순한 우주 이야기라기보다 기다림과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우주와 빛의 속도 같은 거대한 설정이 등장하지만, 결국 핵심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닿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의 외로움은 그대로 아닐까?”
“나는 이런 세상에서는 못 살 것 같은데…”
SF는 원래 먼 미래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김초엽 작가의 소설은 미래를 통해 현재 인간의 감정을 보여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낯선 세계를 읽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현실적인 감정이 계속 남았습니다.

한눈에 보는 수록작 7편 핵심 줄거리 요약
1.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신체적 결함과 차별이 없는 완벽한 유토피아 '마을'의 성인들이 지구로 순례를 떠났다가 돌아오지 않는 비밀을 다룹니다. 결핍과 고통 속에서도 서로를 사랑하는 삶의 숭고한 가치를 일깨워주는 이야기입니다.
2. 스펙트럼
미지의 행성에 불시착한 과학자 '희진'이 지적 능력이 낮아 보이는 외계 생명체 '루이' 무리와 조우하는 이야기입니다. 언어와 종족의 장벽을 뛰어넘어 색채 언어를 통해 나누는 경이로운 소통을 그립니다. 작가의 독특한 설정, 기발함에 놀랐던 이야기입니다.
3. 공생 가설
유아기 시절 인간의 뇌에 공생하며 지성과 감정을 가르쳐준 외계 존재들의 기억을 화가의 신비로운 그림을 통해 추적하는 이야기로, 우리가 잊고 지낸 순수한 기억과 인간성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작가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작가의 상상력이 너무나 부럽습니다.
4.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새로운 우주 항법의 발견으로 구형 노선이 폐쇄되면서 다른 행성의 가족들과 단절된 노년의 과학자 '안나'의 이야기입니다. 효율성 중심의 기술 발전이 소외시킨 개인의 깊은 그리움을 보여줍니다.
5. 감정의 물성
우울, 평온, 공포 같은 감정을 시각적·촉각적 제품으로 파는 사회를 배경으로 합니다. 사람들이 왜 부정적인 감정마저 소유하고 통제하려 하는지, 그 이면에 숨겨진 외로움과 방어기제를 날카롭게 포착합니다. 이 작품에서는 슬라임, 키판과 같은 요즘 장난감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런 시각적, 촉각적 제품으로 감정의 평안을 갖고 싶어 하는 현대인들과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6. 관내분실
사후 기억이 디지털 데이터로 저장되는 도서관에서 인덱스가 지워진 엄마의 데이터를 찾는 딸의 여정입니다. 기록을 추적하며 한 여성으로서 엄마가 감내해야 했던 고독과 마주하고 마침내 화해하게 됩니다. 사후 기억이 저장된다면 갑자기 헤어지게 된 친구나 그리운 할머니 할아버지와 데이터로나마 만날 수 있을까요?
7.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인류 최초의 심우주 탐사 프로젝트에 선발된 우주비행사 '재경'이 발사 당일 탈출해 바다로 뛰어든 진짜 이유를 쫓습니다. 사회가 부여한 영웅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선택하는 의미를 던집니다.
SF를 어려워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이유
저처럼 SF 소설이 어렵게 느껴졌던 분들도 이 책은 충분히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과학적 설명보다 사람의 감정에 집중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낯선 설정은 등장하지만, 결국 이야기를 끌고 가는 건 외로움, 관계, 상실감, 기다림 같은 아주 인간적인 감정들입니다. 그래서 SF 입문서로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특히 이런 분들께 추천해요!
- SF가 궁금하지만 어렵게 느껴졌던 사람
- 짧은 호흡의 소설(단편선)을 좋아하는 사람
- 감성적인 문체와 따뜻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
- 읽고 나서 잔잔한 여운이 남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
마무리 감상
예전에는 SF 소설이라고 하면 차갑고 어려운 이야기라는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오히려 따뜻한 감정들이 오래 남는 책이었습니다.
특히 김초엽 작가 특유의 조용하고 섬세한 문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읽고 나면 엄청난 반전이나 강렬한 사건이 남는다기보다, 잔잔한 생각들이 오래 머무르는 느낌의 소설집이었습니다.
아마 SF 장르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이 책 한번 읽어봐” 하고 추천하기 좋은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처럼 SF가 낯설었던 사람도 끝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