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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녹나무의 파수꾼] 리뷰 - 소원을 이루는 나무의 진실은?

by 예시카(yesica) 2025. 5. 30.

 

녹나무의 파수꾼

어릴 적 누군가에게 간절히 빌었던 기억이 있나요? 별똥별이 떨어질 때, 생일 촛불을 끌 때, 시험을 보기 전 손을 모을 때 [녹나무의 파수꾼]은 그런 기도와 소원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단순히 "소원을 들어주는 신비한 나무"에 대한 환상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숨겨진 삶의 진실과 책임에 대해 깊이 있는 시선을 던집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라고 하면 흔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치밀한 트릭과 예측 불가능한 전개, 그리고 강력한 반전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달랐습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처럼 잔잔한 울림을 주는 휴먼 드라마에 가까웠고, 오히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마음을 흔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조금 지루한 느낌이 있었지만 녹나무의 비밀이 뭔지 궁금해서 책을 놓을 수는 없게 만들었습니다.

1. 줄거리 요약

레이토는 20대 중반의 청년입니다. 부모 없이 자랐고, 제대로 된 직업도 없습니다. 절도죄로 경찰에 붙잡혀 유치장에 들어가 있는데, 본 적도 없는 이모라는 낯선 중년의 여성 야나기사와 치후네가 나타나 제안을 합니다. 감옥에 가지 않게 하는 조건으로 녹나무의 파수꾼으로 일해 달라는 것. 그렇게 레이토는 월향신사라는 조용한 신사에 보내지고, 이곳에서 녹나무의 파수꾼으로 일하게 됩니다. 그 후 영문도 모르고 녹나무의 파수꾼이 되어 일을 하지만 녹나무의 비밀은 알려주지 않고 다만 저절로 알게 된다고만 말합니다. 그 후 보름과 그믐 때쯤에 사람들이 녹나무에 찾아와 기념하는 사람들과 교류를 하며 삶을 배워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점차 녹나무에 기념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름에 하는 것과 그믐에 하는 것의 차이, 무엇 보다 이것이 진짜인지 아닌지에 대해 알아가게 됩니다. 또한 레이토는 자신의 출생과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순탄하지 못했던 삶 그리고 여자의 몸으로 가업을 이어받아 지켜 온 치후네 이모의 삶의 이야기를 알게 됩니다. 한 인간의 삶이 자신의 의지만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운명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미행하기 위해 녹나무에 몰래 숨어들려고 한 유미라는 여자를 만나게 되고 이후 같이 아버지의 비밀을 파헤치게 되며, 급기야 금기를 어기고 몰래 녹나무 안에서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일을 하는지 녹음하게 되고, 결국 들켜버리고 유미는 아버지의 형, 즉 큰아버지에 대한 사연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큰아버지의 음악을 수념하여 음악회까지 열게 됩니다. 그 외에도 후계자로서 아버지의 염원을 읽기 위해서 녹나무에 염원을 하러 오는 소년의 이야기도 나오고 레이토의 이모 치후네의 현재의 상태와 왜 레이토를 녹나무의 파수꾼으로 일하게 했는지 알게 됩니다. 소설의 후반부에 갈수록 레이토는 점차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을 잘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 잔잔하면서도 흥미롭고 재미있게 전개됩니다.

2. 녹나무는 무엇을 상징할까?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녹나무 그 자체였습니다. 단순히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가 아니라, 사람들의 감정을 받아주는 존재, 혹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개체처럼 느껴졌습니다.
녹나무는 대답을 하지 않지만, 이 나무 앞에 선 사람들은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고 스스로 변화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기적은, 누군가가 들어주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마음을 정리하고 용기를 내는 그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3. 성장소설로서의 "녹나무의 파수꾼"

레이토라는 인물은 처음엔 냉소적이고 세상에 기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파수꾼이라는 역할을 맡으면서 사람들과 진심으로 소통하고, 감정들을 마주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단순한 대가성 제안이었지만, 나중엔 진심으로 녹나무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으로 변합니다.
유미와의 관계 역시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했지만, 두 사람은 서로 도와주며 성장과 치유의 여정을 함께 합니다.

4. 개인적인 감상 - 진심을 말할 수 있는 나무 하나쯤 있었으면

책을 다 읽고 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에게도 녹나무가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기 힘든 속마음을 아무 조건 없이 들어주는 존재.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다는 걸, 이 책은 잘 보여줍니다.
현실에서는 그런 나무가 없을 수도 있지만, 그 대신 누군가의 존재, 책 속 문장 하나,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이 우리의 녹나무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녹나무의 파수꾼]은 긴박하거나 화려한 전개는 없지만, 조용한 감동이 밀려오는 작품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추리소설이 아닌 방식으로 인생의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는 이 책은 삶에 지쳤거나 방향을 잃었다고 느끼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줄 겁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바라는 소원은, 사실 마음속에 답이 있다. 이 책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이 참 고맙게 생각되었습니다. 최근에 녹나무의 여신이 출간되어 기대가 되고 있습니다. 다 읽은 후 또 리뷰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