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상의 공간, 탕비실에서 시작된 이상한 게임
책의 첫 장을 펼치자마자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다음 중 누가 제일 싫으신가요?" 공용 얼음틀에 콜라, 커피 얼음을 얼려놓는 사람, 안 씻은 텀블러를 공용 싱크대에 늘어놓는 자칭 환경운동가, 사용한 종이컵을 버리지 않고 정수기 옆에 쌓아두는 사람, 인기 커피믹스를 싹쓸이해 자기 책상에 쌓아두는 사람, 공용 전자레인지 코드를 뽑고 무선 기기 충전하는 사람, 탕비실에서 혼잣말 중얼거리는 사람, 공용 냉장고에 케이크 박스를 몇 개씩 꽉꽉 넣어두고 집에 가져가지 않고 냉장고를 자기 집처럼 쓰는 사람, 아침마다 공용 싱크대에서 가글 폭음을 터뜨리는 사람.
『탕비실』은 바로 이런 사람들만 모아서 일주일 동안 합숙을 시키고 탕비실을 사용하면서 연기를 하고 있는 1명의 술래를 찾는 것을 리얼리티로 촬영을 하는 콘셉트의 소설입니다.
회사 일을 하면서 탕비실을 드나들면서 '진상 후보자들' 중 술래를 찾아야 하는 리얼리티 게임.
소설은 얼음이라는 별명을 가진 인물의 시점으로 흘러갑니다.
2. 줄거리 요약 - "내가 진상일 리 없어!"
회사 탕비실에서 생활하며, 자신은 '절대 진상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일주일간 합숙합니다.
이들 중 누군가는 연기 중인 '술래'이고, 그를 찾아야 하는 게임이인데, 규칙은 단순합니다. 술래를 찾을 수 있는 힌트를 얻기 위해서 규칙을 일부러 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공용 공간에서 민폐를 저질러야 단서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참가자들의 이름이 아닌 별명으로 불리게 되는데, 별명은 그들이 평소 하는 행동에서 따옵니다.
- 얼음: 얼음틀에 콜라와 커피를 얼리는 주인공
- 텀블러: 씻지 않은 텀블러를 남겨두는 환경운동가
- 커피믹스: 커피를 독점하는 사람
- 케이크: 냉장고에 케이크를 넣어두고 방치하는 사람
- 혼잣말: 조용한 공간에서 중얼거리는 사람
이들은 자신의 민폐 행동에 대해 '그럴 수도 있지' 정도로 생각하지만, 정작 다른 이들의 행동은 못 참습니다. 그렇게 이 게임이 계속될수록 참가자들은 자신이 해온 행동을 돌아보게 되고, 술래를 찾는 과정 속에서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됩니다.
3. 감상 - 진짜 진상은 누구인가
『탕비실』을 읽다 보면 묘하게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하고 그럴수도 있지가 아닐 수도 있겠구나로 바뀌게 됩니다.
등장인물들이 나쁘게 보이면서도, 어쩐지 그 안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 옵니다.
"이 정도는 괜찮지 않아?"라고 넘겼던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큰 불편이었을 수 있다는 사실. 그 인식의 전환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묘미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특히 얼음의 정체가 후반부에 밝혀질 때, 조금 놀랐습니다. 얼음을 그렇게 얼렸던 이유가 자기 자신을 위한 독선으로 한 행동이 아니라 남을 생각해서 한 배려의 행동이었다는 것에 말입니다.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면서 그저 '진상'이라 판단했던 시선이 조금은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는 자신을 평가할 수 있는 눈을 진짜 가지고 있는 걸까? 이 질문이 책을 덮고도 오래 남았습니다.
4. 『탕비실』이 특별한 이유
탕비실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공간입니다.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견디고, 잠깐 숨 돌릴 수 있는 직장 속 작은 쉼표.
하지만 『탕비실』에서는 이 평범한 공간에서 감정의 불꽃이 일어납니다.
책은 단순히 진상 유형을 나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내가 진짜 타인을 배려하고 있었는지', '나는 괜찮은 동료였는지',
그런 불편한 질문을 건내게 됩니다. 그 와중에도 이미예 작가 특유의 부드럽고 감성적인 문체는 이야기를 지나치게 날카롭게 만들지 않는 것 같습니다.
5. 오디오북으로 들었을 때
각 인물들의 말투와 감정선을 소리로 들으면 몰입감이 훨씬 올라갔습니다. 특히 '혼잣말' 캐릭터나 '케이크'의 말버릇 등, 활자로는 느끼기 힘든 디테일이 잘 살아나게 됩니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커피 타는 소리, 문 열고 닫는 소리, 냉장고에 물건 넣는 효과음까지 더해지면 정말 그 탕비실 안에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6.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 직장 생활 중, 탕비실에서 기묘한 감정을 느껴본 분
- 『달러구트 꿈 백화점』처럼 감성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
- 일상 속 인간관계의 불편함을 소설로 다시 바라보고 싶은 분
- 자신이 진짜 '착한 사람'인지 확신이 없는 분
7. 마무리 - 당신은 어떤 진상인가요?
『탕비실』은 웃기면서도 묘하게 뜨끔한 소설입니다. 다 읽고 나면, 회사 탕비실에서 컵을 놓는 내 자세부터 바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종이컵보다는 머그컵이나 텀블러를 쓰는 한 사람으로서 탕비실의 물품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진상이 될 수도 있겠구나를 느꼈고 좀 더 조심하면서 탕비실을 사용해야겠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상 책탐리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미예 소설
#탕비실
#오디오북 추천
#직장인 소설
#달러구트 꿈 백화점
#리얼리티 소설
#중편소설
#짧은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