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소영 장편소설 《통역사》 리뷰
― 한 문장의 통역이 진실을 바꾸는 순간
1. 작가 소개|영화적 감각으로 사회를 해부하는 이야기꾼
이소영 작가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이자 소설가로, 약 25년간 충무로 현장에서 활동해 온 베테랑 창작자입니다. 〈옥수역 귀신〉, 〈여고괴담 3 - 여우계단〉, 〈아파트〉, 〈미확인 동영상 - 절대클릭금지〉, 〈로봇, 소리〉 등 다수의 영화 작품을 집필하며 장르와 사회적 메시지를 결합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보여왔습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공포나 스릴러에 머무르지 않고, 사건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구조와 인간의 약함을 끝까지 파고드는 것이 특징입니다.
소설가로서의 전환점은 첫 장편소설 《알래스카 한의원》이었습니다. 출간 직후 소설 베스트 순위에 오르며 “영화처럼 읽히는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이를 통해 소설가 이소영이라는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게 됩니다.
신작 장편소설 《통역사》는 2025년 10월 래빗홀 출판사를 통해 출간되었으며, 출간 전 이미 영화화 계약이 체결될 만큼 높은 기대를 모은 작품입니다.
2. 줄거리 요약|거짓 통역에서 시작된 진실의 균열
《통역사》는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된 ‘네팔의 여신’ 쿠마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스릴러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한 남성과 한 여성이 흉기에 찔려 살해되고, 그 집에 불까지 난 방화 살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현장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정체를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던 네팔 출신의 결혼 이주민 차미바트는 현행범으로 체포되게 됩니다.
이 사건의 중심에는 네팔어 법정 통역사 도화가 있습니다. 도화는 대형마트 와인 코너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통역 일을 병행합니다. 암 수술 이후 약을 먹으며 살아가는 그의 삶은 늘 불안정합니다. 그런 차에 법정 통역이라는 일거리 제안이 들어옵니다. 재판을 앞두고 도화는 피해자 측 변호사로부터 거액의 현금을 조건으로 허위 통역을 해달라는 제안을 받습니다. 결국 도화는 생존을 위해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차미바트의 진술을 의도적으로 왜곡합니다.
차미바트는 과거에 네팔의 여신, 쿠마리였다가 버려진 여인이었으며, 최근에 다시 제3의 눈이 열린 존재이며, 파란 옷을 입은 남성이 두 남녀를 살해했다고 주장하지만, 법정에서 사건은 도화의 통역으로 인해 저열한 치정 살인으로 바꿔지게 됩니다.
재판이 끝난 뒤, 도화는 다시 차미바트를 만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병, 자신이 사는 지역, 그리고 이 살인 사건이 방폐장 문제라는 거대한 음모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야기는 개인의 범죄를 넘어 돈과 권력, 여론이 얽힌 사회적 스릴러로 확장되며 진실을 향한 추적은 점점 더 위험해집니다.
※ 쿠마리 : 네팔의 살아있는 신, 만 5세 안 쪽의 아주 어린 여자아이를 선발하여 살아 있는 여신으로 섬기는 네팔의 전통입니다. 그러나 피는 불경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쿠마리 활동 중에 월경이 시작되거나 상처 등으로 피를 흘리면 은퇴를 하게 되는데, 현재는 은퇴 후에 국가로부터 연금을 받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20세기 이전에는 은퇴한 쿠마리에 대한 온갖 편견과 천대가 있었으며, 아동인권에 대해 많은 비판을 받아 왔다고 합니다. - 출처: 나무위키
3. 감상평|통역이라는 이름의 권력, 그리고 신의 심판
《통역사》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라는 이소영 작가의 강점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작품입니다. 장면은 영상처럼 떠오르고, 대사는 짧고 정확하며, 사건은 멈추지 않고 앞으로 밀려갑니다.
이 소설의 핵심은 ‘통역’이라는 행위가 결코 중립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데 있습니다. 한 문장의 선택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고, 사건의 성격마저 뒤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통역은 하나의 권력으로 작동합니다.
네팔의 쿠마리 신앙과 한국의 재판 시스템이 충돌하며, 신과 인간, 믿음과 증언, 환상과 현실의 경계는 끊임없이 흔들립니다. 작가는 설명 대신 장면과 행동으로 낯선 문화를 이해하게 합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는 방폐장 문제로 확장되며 이 작품은 단순한 스릴러를 넘어 사회 고발 소설의 성격을 띱니다. 결말부에서는 신적 판단처럼 보이는 환상성이 등장하며, 탐욕과 비리에 찌든 사회를 정면으로 응시합니다.
《통역사》는 “무엇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끝까지 놓지 않는 작품입니다. 읽는 동안 강한 몰입감을 경험하게 되며, 다 읽고 나서도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소설입니다.
▷ 통역은 왜 죄가 되는가 : 소설에서 도화는 직접 칼을 들지 않았지만, 작가는 분명히 말합니다. 말을 왜곡하는 순간, 도화 역시 사건의 공범이 되었다고. 이 소설은 진실을 말하지 않은 죄가 거짓을 만들어낸 죄와 얼마나 가까운지 보여줍니다. 통역이라는 직업이 가진 윤리적 부담을 이처럼 드러낸 소설은 드물 것 같습니다.
▷ 방폐장과 연결되는 이유 : 방폐장은 이소설에서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게 밀어 넣고, 위험을 감추고, 약한 지역과 사람에게 떠넘기는 구조의 상징입니다.
차미바트, 도화, 그리고 그들이 사는 지역은 모두 사회가 선택적으로 외면해온 존재들입니다. 이 사건이 개인의 범죄로 끝나지 않는 이유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책탐리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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