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디오북으로 처음 만난 『사라진 서점』
『사라진 서점』은 평소 같았으면 그냥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를 소설이었다. 다른 오디오북을 듣고 있다가 끝나면서,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런데 첫 문장을 듣자마자 목소리 톤과 분위기에 푹 빠져버리고 계속 듣게 되었다.
낭독자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울려 퍼지는데, 마치 오래된 흑백영화 속 장면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글자로 읽는 책은 내가 머릿속에서 장면을 상상하지만, 오디오북은 그 장면의 상상에다가 분위기의 소리까지 들려주니 상상이 좀 더 구체적이 되는 것 같다.
2. 세 인물과 사라진 서점의 비밀
이야기는 세 명의 주인공이 이끌어간다.
마서는 힘든 결혼 생활을 끝내고 새 삶을 시작하려고 더블린의 오래된 저택으로 이사 오게 되고, 보든 부인의 가정부로 일을 하면서 거기서 우연히 사라진 서점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걸 따라가면서 과거와 연결된다.
헨리는 책을 수집 사람인데, 단순히 모으는 게 아니라 책 속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사람 같다. 그러다 마서와 얽히고, 둘은 함께 사라진 서점을 쫓게 된다.
오펄린은 1920년대에 서점을 운영했던 여성인데, 그녀는 강압적인 가족으로부터 벗어나 파리로 와 서점을 운영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녀는 파리와 더블린을 오가며 문학과 함께 살았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왠지 모르게 버지니아 울프가 생각났다. 그녀와 마서와의 관계, 세 사람의 연결점이 반전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3. 서점이란 공간이 주는 의미
이 소설에서 진짜 주인공은 서점 그 자체 같다. 사라진 서점은 지도에도 없고, 물리적으로 찾을 수 없는 곳이다. 오직 누군가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공간인 것이다. 마서와 헨리가 그곳을 찾아가는 과정은 결국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처럼 느껴졌다. 나도 이 소설을 들으면서 문득 예전에 가졌던 꿈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4.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이야기에는 현실과 환상이 섞인 장면이 많다. 어떤 때는 인물의 감정이 공간을 바꿔놓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시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도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 들을 때는 헷갈리는 부분이 있어서 그만 들을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들을 수로 빠져들었고 오히려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오디오북이라 그런지 이런 장면들이 더 생생하게 다가왔으며, 특히 오펄린이 등장하는 대목은 과거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라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5. 여성의 이야기와 연결
『사라진 서점』은 결국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오펄린과 마서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닮은 점이 많다. 둘 다 억압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지키려 하고, 책과 문학을 통해 자유를 꿈꾼다.
이 둘의 관계가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가 호기심을 자극했으며 또한 반전으로 마무리되었다.(책을 읽을 독자들을 위해 스포일러는 빼도록 하겠다.)
나는 마서를 가정부로 고용한 보든 부인도 중요한 인물로 보였다. 요즘의 츤데레 같은 인물이라 정감이 갔으며 마서에게 그런 분이 생겨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켜 주는 촉매제 같은 역할의 인물이라 여겨졌다.
6. 오디오북이 주는 특별한 감정
책을 눈으로 읽는 것과 귀로 듣는 건 확실히 다르다. 책을 눈으로 읽으면 오로지 글자만으로 나만의 방식으로 상상하며 읽게 된다. 하지만 오디오북은 성우의 목소리 연기력, 목소리의 떨림, 문장 끝의 호흡, 장면 사이의 정적까지 그대로 전해져서 감정이 더 깊게 남게 된다.『사라진 서점』처럼 잔잔하고 서정적인 이야기는 오디오북으로 들을 때 더 매력이 살아나는 것 같다.
7. 책이 끝난 후 남은 생각
처음 사라진 서점이라는 제목으로 봤을 때는 미스터리 소설일 거라는 예상으로 책을 듣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 듣고 나서 보니 이 책은 미스터리라기보다는 여성의 역경, 그리고 꿈과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 그 속에 사랑이야기 등 여성의 관한 소설이었다. 인물별로 나뉘고 그 속에 연도를 잘 확인하면서 들어야 했기에 처음에는 헤갈려서 다시 돌려 듣고 하기도 했지만, 소설 자체의 마법 같은 장면들과 뭔가 초자연적인 능력이 있는 것 같은 등장인물들이 흥미로웠다.
결국 사라진 서점은 마음속에 있었으며 나를 알게 되자 서점이 생겨났다는 조금을 허무할 수 있는 결말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피엔딩은 언제나 기분이 좋아지게 만드는 것 같다. 그리고 반전 아닌 반전 같은 이야기의 연결이 소설을 흥미롭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가 잊었다고 생각했던 기억이나, 오래전에 가지고 있었던 꿈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내게 단순한 이야기 그 이상이었다. 존재하지 않지만 결코 잊히지 않는 공간, 그리고 그곳을 향해 가는 여정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