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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알 ]오디오북 리뷰; 누군가의 그림을 대신 그린 대가 : 탁란의 진실

by 예시카(yesica) 2025. 6. 27.

한영미 작가의 장편소설 『달콤한 알』은 겉보기에 평범한 청소년 성장소설처럼 보이지만, 한 꺼풀만 벗기면 가족이라는 틀, 예술이라는 이상, 그리고 자아와 양심의 경계에 서 있는 한 소녀의 처절한 내면을 마주하게 되는 작품입니다. 저는 이 소설을 오디오북으로 들으며, 주인공 우림의 선택이 던지는 물음들에 자연스레 빠져들었습니다. 한영미 작가는 아동 동화작가로 자신의 동화를 읽어주던 아이들이 자람에 따라 청소년 소설인 달콤한 알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달콤한 알-출처 교보문고

1. 줄거리 요약

주인공 우림은 미대를 꿈꾸는 고등학생입니다. 하지만 믿었던 아버지의 외도 장면을 목격한 이후, 더 이상 아버지의 경제력에 의존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독립을 결심하게 됩니다. 문제는, 경제적 현실입니다. 고액의 미술학원비와 입시 준비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없는 우림은 결국 자신이 다니던 미술학원에서 부모 몰래 아르바이트를 하게 됩니다.

그런 우림 앞에 재벌 손녀인 현아가 등장합니다. 미술에 대한 실력은 없지만 아이디어가 많은 현아는, 우림에게 비밀스러운 제안을 합니다. 자신이 그림의 아이디어를 줄 테니, 우림이 대신 그림을 그려 공모전에 제출해 달라는 것. 그리고 그 대가로는 충분한 돈을 지불하겠다는 조건입니다.

처음에는 망설이던 우림이었지만, '독립'이라는 목적을 위해 결국 이 거래를 수락하게 됩니다. 그렇게 둘의 비밀스러운 '탁란(托卵)'의 공모가 시작되고, 현아는 우림의 실력 덕분에 공모전에서 입상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비밀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같은 학원에 다니는 가희가 인터넷 게시판에 이 사실을 폭로하면서, 두 사람의 대작 사건은 '탁란'이라는 표현과 함께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림은 과거 아버지의 외도를 '탁란'에 비유하며 경멸했는데, 정작 자신 또한 탁란의 가해자임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현아는 외국 연수를 떠나버리고, 우림은 그림 대작 소문으로 인해 그해 입시를 포기해야만 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2. 감상 - 무엇이 진짜 우림의 '알'이었을까

소설을 들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키워드는 바로 '탁란'이었습니다. 탁란의 사전적 의미는 뻐꾸기와 같은 새가 다른 새의 둥지에 자신의 알을 낳는 행동을 말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알을 다른 새가 대신 품고 기르게 하는 것입니다. 즉, 책임은 회피하고 결과만 얻으려는 생존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뻔한 대입 준비와 예술을 향한 경쟁의 서사가 아니라, '누가 진짜 새끼를 낳았는가', '그 알은 누구의 것인가'에 대한 비유를 통해 인간의 도덕성과 선택의 책임을 묵직하게 전달합니다.

우림이 처음 아버지를 향해 느꼈던 분노는, 타인을 파괴하고 자신만의 행복을 좇는 위선적 행위에 대한 혐오였습니다. 하지만 그 분노는 결국 자신의 내면으로 돌아오며, "나는 그와 얼마나 다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그렇게 우림은 자기 합리화의 껍질을 깨고, 진짜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성장통을 다룬 소설이 아닙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청소년들이 처한 현실(부모의 경제력에 의지해야만 하는 삶, 사회적 자본의 격차 속에서 무기력함을 느끼는 감정)을 날카롭게 그려내면서도, 도덕적 선택 앞에서 고민하는 인간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3. 『달콤한 알』이 던지는 메시지

한영미 작가의 『달콤한 알』은 청소년 성장소설이라는 틀 안에 머물지 않습니다. 이 책은 도덕, 관계, 예술, 교육, 계급, 심리 등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는 복합적인 이야기입니다. 특히 "내가 그린 그림을 남이 전시하고 상을 받는다"는 설정은 예술과 윤리의 접점을 고민하는 독자들에게도 매우 흥미롭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우림이라는 인물은 우리 모두가 살아가며 마주하게 될 수많은 유혹과 양심의 경계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탁란은 멀리 있는 일이 아닙니다. 남의 말과 생각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행위, 부정한 방법으로 성과를 얻는 행동 모두가 사회 속 탁란일 수 있습니다. 『달콤한 알』은 우리에게 묻는 것 같습니다. 당신의 삶에서, 그 알은 정말 당신이 품은 것입니까?

4. 마무리하며

『달콤한 알』은 제목처럼 겉으로는 달콤한 유혹이지만, 그 안에는 씁쓸한 현실과 도덕적 책임이라는 알맹이가 들어 있습니다. 우림이 겪는 고통과 갈등은 단지 한 소녀의 이야기가 아닌, 이 사회 전체의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예술은 순수함으로만 존재할 수 없는가? 우리는 삶에서 어디까지 양심을 저버릴 수 있는가? 이 책은 그 질문을 조용히, 그러나 강력하게 던집니다.

오디오북으로 들으며 더욱 몰입할 수 있었던 이 작품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되새기게 해 주었습니다. 주인공인 우림이는 대작을 해놓고 왜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분명히 처음에는 잘못된 일임을 알고 망설였었는데... 자신도 아버지와 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인해, 대작이라는 커다란 거짓말을 하고도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참 안쓰럽기도 하고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삶의 중심을 잃고 방황하는 청소년, 혹은 이미 양심의 무게를 짊어진 어른 모두에게, 『달콤한 알』은 지금껏 외면해 왔던 진실과 용기를 마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