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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존재와 공존할 수 있을까? ; 김초엽 작가의 [파견자들]을 읽고

by 예시카(yesica) 2025. 5. 29.

파견자들

1. SF를 빌려 묻는 철학적 질문

김초엽 작가의 『파견자들』은 단순한 미래 세계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독자에게 깊은 물음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우리는 타자와 공존할 수 있는가? 같은 질문이 작품 전반에 스며 있어요.
저는 이 책을 단순히 지구 멸망 이후의 이야기 정도로 예상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곧 그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오히려 이 소설은 존재의 경계, 의식의 본질, 공존의 윤리에 대한 섬세한 탐색이었고, 작가 특유의 조용하고 섬세한 문체 덕분에 생각보다 깊이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2. 소설 속 배경과 줄거리 요약

『파견자들』의 배경은 현재가 아닌 오염된 미래의 지구입니다. 인류는 정체불명의 생명체, 범람체에 의해 지상의 환경을 잃고 지하로 숨어들게 됩니다. 범람체는 공기 중에 퍼지는 아포(포자)를 통해 인간에게 광증을 일으키며,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언어와 이성을 잃고 무너집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태린은 지상 탐사를 수행하는 파견자가 되기를 꿈꾸며 훈련 중입니다. 그녀는 훈련 도중 이제프라는 스승과 함께 지상에 파견되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전개됩니다.
지상에서 태린은 이라는 존재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데, 그것은 환청인지, 범람체와의 연결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쏠은 점점 더 태린에게 영향을 주며, 두 존재는 경계가 모호해집니다. 이 과정에서 태린은 자아와 타자의 경계, 공존의 의미를 깊이 체험하게 됩니다.

3. 깊이 있는 메시지 - 인간 중심에서 벗어나기

이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인간 중심적 시선을 해체하려는 시도가 계속된다는 점입니다. 범람체는 단순히 해로운 존재가 아니라, 자신만의 생존 방식과 생명 질서를 가진 독립된 생명체로 그려집니다. 범람체는 우리를 해치는 존재지만, 의도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오히려 우리가 침범한 쪽일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은 그렇게 공존의 조건을 되묻습니다.

4. 태린과 쏠 - 자아와 타자의 경계

쏠은 처음에는 태린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듯하지만, 점차 자율적인 감정과 의사를 가진 존재로 느껴집니다. 둘 사이의 대화는 인간과 비인간, 자기와 타자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과정입니다.
이 소설은 독자에게 자아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변화하고 확장되는 것임을 깨닫게 합니다. 그 안에는 낯섦과 불편함이 있지만, 동시에 깊은 공감과 확장의 가능성이 담겨 있습니다.

5. 감상 - 침묵 속에서 피어나는 이해

『파견자들』을 읽으며 놀랐던 점은, 사건 중심의 전개가 아닌 감정과 인식의 변화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SF 장르지만 난해한 과학 설명은 거의 없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문장과 감정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김초엽 작가의 문체는 부드럽고 조용합니다. 그 덕분에 인물의 변화에 집중할 수 있고, 책을 읽으며 나 또한 생각의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6.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인간과 타자, 존재와 의식에 대한 철학적 주제에 관심 있는 분
  •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SF 소설을 찾는 분
  • 빠른 전개보다 인물의 내면 변화에 주목하는 작품을 좋아하는 분
  • 김초엽 작가의 전작을 좋아했던 독자

7. 마무리하며

『파견자들』은 명확한 해답을 주는 책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점이 이 작품의 매력입니다. 다름을 혐오하는 대신, 이해하려는 태도. 타자를 배척하는 대신, 함께 살아가는 법을 고민하는 이야기.
이 책은 말합니다. 우리는 결국, 타자를 통해 나 자신을 이해하게 되는 존재라고. 조용히 그러나 깊게, 우리 삶의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었습니다.